가을날 화순이와 홍유릉 산책
오래전 암수술을 했던 아주 작은 친구가 있다.
우리는 그 친구를 1번 이라 불렀다.
딱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플 정도로 키가 작은,,,
그러나 마음은 어지간한 사람들 보다 훨씬 큰 친구였다.
해마다 혹 재발이 되진 않았을까?
늘 열심히 산행하며 봉사하며 일하며 사는 친구이지만
정기적인 검사를 받는다.
얼마전 검사에서 신장에 이상이 발견되었다.
하필 가을날,,,
일년 내 숨겨놨던 여린 감성이 살살 고개를 드는 가을날에
그 소식은 씩씩하던 친구를 한방에 무너트리는것 같았다.
서로 주고받는 카톡엔 늘 우울함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말로 위로를 하는것은 한계가 있었다.
내 위로의 말이 그녀의 마음에 가 닫기엔 문명이란 매체는 좀 삭막했다.
어제밤 카톡으로 조영술및 여러가지 검사를 받고 돌아왔는데
결국 수술을 해야한다는 결과였다고 기운없어 하는 그녀를 대하며
내일 점심이나 같이 할래? 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홍유릉 산책길을 걸으며 참 많은 이야길 나눴다.
지난번 방문때는 잠깐 안에만 둘러보고 왔었는데
오늘은 능 바깥의 오솔길을 따라 한시간 가량 걸었다.
평탄한 흙길,,,
커다란 은행나무를 비롯 계절을 갈무리 하는 고운빛이 서러웠다.
그 서러움을 친구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수다를 떨었다.
여기 벤치에 앉아 친구가 다려온 산국차를 마셨다.
늘 뭔가 일을 찾아하는 친구는 지난번 생율을 맛나게 먹던 나를 기억하고
어제 저녁 밤 한바가지를 깨끗하게 깍아 가지고 왔다.
국화향이 입안에 가득하고 오독오독 소리도 맛나던 생율을 햇빛과 함께 먹었다.
어딘선가 잘 알아들을수는 없지만 웅얼거리는 스피커 소리가 한가롭다.
오늘 그녀의 딸래미 학교에서 행사가 있다고 아마도 그 소린가 한다.
혜령이 어릴때 참 고집스러웠는데,,,
하며 이야길 풀어놓던 그녀의 얼굴에서
난 어쩐지 채워진 충족감 보다는 비워진 어미새의 품새를 본듯했다.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지나간 세월에 대한 추억.
그것을 또 이야기 나눴다.
홍유릉 외곽길을 따라 걸으니 아직 개발이 덜 된 옛 동네도 지나쳤다.
우리 자랄적 이야길 하며 조금 밝아지던 그녀의 얼굴.
왜 그렇게 산엘 자주 가는가에 대해.
형제들과 함께 자라던 추억에 대해.
아이들 어릴때 등에 업고 밤 주우러 이곳엘 왔던 추억에 대해.
아마도 그녀는 겁이 나는게 아닐까 싶었다.
까만 강아지 한마리가 우리 동행이 되어줬다.
까맣기에 그냥 까망아~ 하고 불렀더니 알아듣고 쪼르르 달려와 꼬리치며
내 손등에 부비부비를 한다.
난 참 개를 무서워 했었다는 이야길 했다.
어느 순간부터 동물이지만 강아지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그 인상이 유순한 아이들은 이제 겁없이 만져보고 불러본다고 했다.
사람도 찬찬히 얼굴을 보면 어쩐지 그 사람의 인성이 조금은 보이는것 같다고 했다.
나이 들어가며 곁에 사람이 다가올 인상으로 변화하는것은 그사람의 지난 삶을 말하는것 아닐까?
우리 순하게 늙자고도 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들깨 칼국수를 맛나게 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 들었다.
그렇고 그런 흔한 식당이었는데 들깨칼국수는 참 순하고 고소했다.
서로 많이 먹으라 권하며 깨끗하게 비우고 다시 홍유릉으로 향했다.
이번엔 능 안쪽을 둘러봤다.
지난 여름 찾아왔을때와는 또 다른 느낌.
그러나 하늘은 구름이 점점 깊어간다.
이곳은 아마 그옛날 관리인이 거주하던 곳이 아닐까 싶다.
여름 무더울때 찾와와 벌렁 누워있었던 그 작은 마루.
마치 에어컨을 켠듯 시원해 절로 잠이 올것같았던
편안한 그 마루에 앉아 겨우 한계절 전의 추억을 또 이야기 했다.
그때는 무심 지나쳤을 마당의 비질 곱게 한 모습이 눈에 띄였다.
분명 싸리비가 아녔을까?
누가 그렇게도 정갈하게 마당을 쓸었을까?
이렇게 평생을 살면 병마가 찾아들 틈도 없겠다 싶었다.
그저 마루에 누워 눈을 감고 나를 열어
소리, 향기, 감촉, 흐름을 고스란히 온전히 느껴보라.
이렇게 사는게 정답인데,,,
너무 뛰어왔구나 싶었다.
그렇게 걸어 주차장에 오니
아까 열심히 은행을 줍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은행의 그 꼬리한 냄새는 아직 그곳에 남아있었다.
아프지마,,,
편안하게 생각해,,,
흔한 말밖에는 할수없었다.
더 기운낼 뭔가 멋진말을 찾느라 한참 머리를 굴렸는데,,,
고마워,,,
네가 한달음에 달려와줘 호강한거 같아.
그녀도 흔한 말밖에는 할수없었을것 같았다.
우리는 아마도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기에 더 깊게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았을까?
돌아오는길 하늘이 점점 무거워 진다.
이틀 내내 그리도 쏟아냈으면 좀 가벼울만도 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