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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쉬는곳

꽃지는 소리

by 동숙 200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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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는 소리。최명란。


꽃만 피면 봄이냐
감흥 없는 사내도 꼽으면 님이냐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다가와서는
오래된 병처럼 나가지 않는 사내 가슴에 품고
여인은 벌거벗은 채 서 있다.


가랑이와 겨드랑이와 가슴과 입술에서 동백꽃이 피어나
그만 고목의 동백이 되어버린 여인


가슴 도려내듯 서러운 날이면 입으로 동백꽃을 빨았다는
수많은 날들 소리없이 울며불며 달짝한 꽃물을 우물우물 빨았다는
장승포에서 뱃길로 이십 분 거리
동백섬 지심도 동백꽃 여인


육지를 버리고 부모 손에 이끌려 섬으로 와
시집살이 피멍든 여인의 가슴은 검붉은 동백기름이 되어버렸다.


시든 것들이 오히려 더 질긴 법
꽃답게 피었다가 꽃답게 떨어지는 일 쉽지 않구나
지난 밤 내린 비에 무참히 떨어진 동백 여인의 시들한 몸이
밀물 때린 갯바위처럼 차다.


가슴을 파고드는 파도의 냉기가 무리지어 달려와
또 한 번 매섭게 여인을 내리치고 뒷걸음질친다.


아하! 부러진 가지에도 꽃은 핀다.


여인의 가랑이에 겨드랑이에 가슴에 입술에
다시 붉은 동백꽃이 핀다.


꽃만 피면 봄이냐
붉기만 하면 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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