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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의 집에 살았습니다
종점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에 올라
얼키설키 모인 집들과 몇 개의 텃밭을 지나
막다른 골목 계단 맨 끝 문간방
그 집에서 오랫동안 가을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창문 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팔꽃, 해바라기
저녁의 적막을 어루만져주던 가문비나무
가끔 아주까리 넓은 잎사귀가 슬픔을 가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담장 너머 이어지던 지붕과 지붕들
그 위로 햇빛이 만들어 놓던 빛나던 개울들
황금여울을 따라 저녁의 끝까지 갔다왔습니다
돌아오면 처마 밑 어둠이 뚝뚝 떨어지고
어디선가 쌀 일구는 소리 너무 커 적막해라
눈을 감고 술렁이는 내 마음 속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불을 켜기 힘든 저녁
하늘색 나무대문을 열고 나가
해바라기가 서 있던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나팔꽃 까만 눈동자처럼 한 시절 야물딱지게 맺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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