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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문득 생각난 그녀

by 동숙 201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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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처음 그녀는,,,

 

아주 작은 키에 목덜미 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단발이었다.

나이가 동갑이라는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후에 알았다.

당시 내 아이들은 고등하고 초등학교에 재학중이었고 그녀의 아이들은 이제 겨우 세살과

생후6개월의 형제였기에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인줄 알았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작은 삼거리의 일층에 살던 그녀는 참 개방적인 성격이었고 생활이었다.

처음 낯선곳에 이사를 와서 낯가림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도 늘 열려있던 거실창과 그녀의 눈

그리고 마음은 간혹 날 놀라게 하기도 충분했다.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걸음마가 익숙치 않은 큰아들도 늘 꼬질꼬질 검댕을 묻히고 있었고 들락날락하던 누런 콧물은

지금도 생각이 날 정도였다.  치우지 않아 이불과 옷가지로 너저분한 거실을 늘 활짝 열어놓은

창을 통해 볼수있었다. 삼거리 길가의 집이기에 오가며 볼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녀는 태평했다.

 

그녀의 남편은 키가 무지 컸다.

살짝 뚱뚱하지 않을까 싶은 몸매에 서글한 표정이 순둥이라고 씌여 있었다.

자동차 정비 기술자라 하였다.

벌이도 꽤 된다는 소릴 훗날 들었었다.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그녀였다.

요즘 젊은이들 아이들 발에 흙 한알갱이도 뭍히지 않으며 키운다는데 집안 인테리어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던데 그녀는 참으로 별종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흠을 다 제치고 그녀가 사람들 틈에서 사랑받는것은 그녀의 열린 마음이었다.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제 집앞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건네는 인사 그리고

시원한 물 한잔 겨울엔 그것이 따뜻한 커피일때도 있었다.

 

알고보니 나와 동갑이었다.

더 알고보니 그녀에게 늘 마음이 쓰였고 딱히 동정심이라 명하긴 그렇지만 안스러운 마음에

뭐 하나라도 나누고 싶어졌었다.

 

어릴적 버려져 이집 저집 더부살이를 하다가 어느집으로 들어가 오랜 가정부 즉 식모살이를 했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한집에서 고용인으로 살다가 지금 남편을 소개받고 본인의 가정을

처음 꾸렸다는 이야길 터 놓은것은 훗날 이었다.  그제서야 그녀의 어린 아이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그토록 오지랖 넓게 오가는 사람들 다 챙기는 모습이 어쩌면 구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가끔 건네주는 물한잔 주스한잔이 부담스러웠던 내 도시적 깔끔함이

미안하기도 했었다. 

 

누워 버둥거리던 아기가 자라서 첫돐이 되었다.

서울 천호동에서 돌상을 받는다기에 집에서 하지 왜? 했더니 남편 직장 사람들도 오고 또 지인들도

오는데 번듯하게 하고 싶다던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날,,, 동네 친구들과 돌잔치에 갔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고운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부부는 참 이쁘고 멋졌다.

아이들도 앙증맞은 한복으로 귀염스러웠다.

여전 개구장이 큰아이는 반쯤 벗겨진 한복차림으로 온 상밑을 다 쑤시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축하를 하며 바라본 그녀의 가족들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

 

이년을 같은 동네에 살았다.

전세로 들어온 집 계약기간이 끝나고 마침 신랑도 다른곳으로 직장을 옮겨 이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여주,,,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그녀가 떠나고 난 그집은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들어왔다.

한번도 그 거실창이 열린것을 본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길처럼 열려있던 현관도 나무담장으로 막아

놓아 집의 외양은 참 그럴싸 하지만 사는 사람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서서히 내 기억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몇년쯤 흘렀을까?  하루는 그녀의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했었다.

여주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던 그녀를 동네친구가 병원에서 만났는데 서울의 큰 병원이었다.

안그래도 작던 사람이 아주 쪼그라져 더 작아졌더란 이야길 했다.

 

왜 이렇게 안되보여?  여긴 어쩐일이야?  하며 안부를 물으니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암이래 하더란다.

그녀는 그동안 암을 앓았단다.  수술을 해서 조금 잡아놓으면 다른쪽에서 또 재발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잘 치료하란 말을 해주고 돌아섰는데 내내 마음이 아팠다는 친구의 말을 전해

들으며 세상에,,, 세상에 어쩌면,,,만 되풀이 했었다.

 

참 사람이 복도 없지.

살아오는 세월이 어찌 그리도 박복한지 어릴때부터 그녀의 삶을 대충 알고 있던 난 너무 안스러웠다.

그후 그녀의 소식은 들을수 없었다.

 

잘 치료하고 아이들과 그 순한 신랑과 잘 살고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 작은 몸에 무슨 그리도 많은 업이 숨어있어 고단하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늘 주변의 그 누군가의 눈길 손길을 애타게 그리워하던 정많은 그녀는 지금 아마도 잘 살고 있을꺼야.

그래야 세상은 공평한게 아닐까?

 

오늘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여주 어디쯤 산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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