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뭔가 끝이 보이는 일요일 이었다.
오월 말경부터 유월을 꼬박 그리고 칠월의 초순인 지금까지,,,
하고픈것 많은것을 참고 또 참고
가고픈곳 많은곳을 뒤로 미루며
보고픈것 많은것을 맘속에만 가둬두고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래도 틈틈 전화와 문자를 통해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며 그리움도 뛰쳐 나가고픈 마음도
달래며 그렇게 보낸 나날들의 마무리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내가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그대 가슴에서 생겨나
그대 눈에서 태어나고
그대 뺨에서 살다
그대 입술에서 죽고싶다.
지난주 어느날 문득 오래전에 외웠던 싯귀의 한구절이 떠올라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것은 왜일까?
아마도 아줌들의 수다에서 느꼈던 어떤 허무함과 삭막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권태기인지 신랑이 보기 싫다던 한 친구의 말에서 처음 만났을땐 사랑에 빠졌을땐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물음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절절히 그리워하며 외웠던 싯구.
온 세상의 그 어떤것도 모두 그대와 연결되었던 그대라는 한 사람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것 같았던 그때,,,
시간이,,, 세월이 흘러감에 점점 엷어지는 그 마음.
아니 엷어지는게 아니라 익숙해지는것 그게 맞지 않을까 싶다.
익숙해지며 시나브로 희미해지는 감정들,,,
숙녀로 요부로 남아 있고 싶다란 다짐들도 어쩌면 잊고 있었지 싶다.
오래전 난 그랬었다.
그런 바램을 가졌었다.
그런 다짐도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숙녀로 때론 요부로 남아있겠다고,,,
이번을 계기로 돌아보니 나또한 펑퍼짐 아줌으로 살아가는것 같아 그 바쁜 와중
서글퍼졌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는 자괴감도 생기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지 하며 나 자신을 다독이고 각고하는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올들어 제일 많은 비가 내렸다.
아들애 데리고 출근하는 아침 팔당호는 뽀얀 물안개에 감춰져 신비로웠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보금자리 " 나눔의집 " 앞이 제일 취약지구이다.
이곳 퇴촌은 웬만해선 물로 인한 피해는 입지 않는데 내가 살며 두번쯤 피해라고
할것까지는 없지만 도로가 물에 잠겨 차가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침 나눔의집 앞의 도로와 팔당호 물과의 높이는 일미터쯤 차이가 있었다.
하루종일 엄청나게 내리던 폭우때문에 퇴근을 할땐 경안으로 돌아서 가야하나
걱정을 했었다. 마음 졸이며 퇴근하던 길 나눔의집 앞의 도로는 불과 서너뼘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물이 늘어있었다.
싯누런 황톳물이 오만가지 쓰레기를 품고 거세게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라 더이상 물이 불진 않겠지만 그래도 뒤숭숭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집앞 개울의 물도 다리 바로 밑까지 거칠게 숨도 쉬지않고 몰아치고
있었는데 돌아와 창을 열고 내다보니 한적하고 평화로운 비오는 풍경으로만
비춰진다. 무슨 아이러니인가,,,,
사위가 어두워지고 부턴 맹꽁이까지 신났다고 맹꽁 울어대고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안과 밖이 이렇게 다를수가,,,,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렇지 않을까?
밖에서 바라본 창안의 풍경은 늘 따사롭고 편안해 보인다고 하는것처럼
내가 오늘 창안에서 바라본 밖의 풍경이 의외로 평안해 보였던 것처럼
삶은 어쩌면 착시일지도 모른다.
늘 피곤해 힘들어를 달고 살았던 요즘
엄니 말씀처럼 피곤해도 힘들어도 일할수 있음을 감사하며 내려다 보고 살아야지
내몫의 것만 감사히 받으며 눈 돌리지 말고 살아야지 싶다.
사진의 꽃은 어릴땐 자주 보던 꽃인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잎은 담배잎처럼 커다랗고 약간 거친데 보라빛 꽃은 앙증 앙증 이쁘던 꽃이름이
까맣게 떠오르지 않는다.
혹 이름을 알고 있는 친구가 있을까?
'오늘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용두리는,,, (0) | 2011.07.10 |
---|---|
아주 오랜만의 짧은 만남 (0) | 2011.07.07 |
길고긴 시간을 지나 맺은 인연 오래 아름다워라 친구야,,,, (0) | 2011.06.19 |
생각지도 않았던 드라이브 (0) | 2011.05.29 |
팔십프로는 긍정적,,,,^^ (0) | 2011.05.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