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엘 다녀왔다.
맘껏 다니지 못해 아쉬웠는데 어젠 산엘 싫증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싱그러운 향과 고운꽃으로 맞아주는 산은 언제나 늘 그자리에
있었다. 이젠 손금 들여다보듯 어디쯤에 뭐가 있는지 짐작을 할수있는 내 놀이터인
퇴촌의 작은산들은 내게 편안한 쉼의 장소였다.
출퇴근길 산을 지나치며 마음의 갈등이 깊었었다. 정말 할수만 있다면 지금 이 계절엔
매일 산으로 줄행랑을 치고 싶어진다. 그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고 점심먹고
삼십분가량은 늘 일터의 옆산으로라도 가본다.
내가 잘 아는곳 내가 편안한곳 내게 살아갈 기대를 품게하는곳이다 산은...
산엘 오르려 가는길 잠시 아는분을 만났다.
이발소 사장님...ㅎ
작은집을 짓고 우리동네로 들어오신지 한 오년쯤 되었을까? 어젠 집앞 마당에서
굉이질을 하고 계셨다. 잠시 차를 세우고 인사를 하는데 담벼락에 연보라빛 미국
제비꽃이 화사하다. 처음엔 참 삭막하더니 어느새 작은 원두막도 지어놓으시고 틈만
나면 이발소 문 닫아걸고 집으로 오신단다. 전화가 오면 다시 나가시고 마당밭에
뭔가 심고 가꾸는 재미가 넘 좋으시단다.
내 꿈도 그러한데...
가끔 신랑과 애들에게 그런말을 하곤 한다.
이 빌라를 팔고 땅을사서 집지을 돈 모을때까진 하다못해 컨테이너 하나 놓고 그냥
살면 안되겠냐고... 사는것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그 조금의 불편은 감수하고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했었다. 마당에 이것저것 예쁜꽃도 심고 우리 야생화도 심고
상추나 고추같은 먹거리도 심고 그렇게 살고싶다고... 아들은 늘 대찬성이다 멍멍이
키우고 그렇게 살면 저는 컨테이너도 상관없다고 한다. 하지만 울 신랑은 번듯한
이쁜집을 짓지 않으면 절대 옮길 생각은 없단다.
내 꿈이 그렇기에 늘 마당있는 집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다.
이발소 사장님과 다음에 언제 등산한번 하자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정아네 밭가에
차를 세웠다. 거기부턴 산을 타고 다닐 생각이었다.
팔월이면 가끔 영지가 눈에 띄는 산부터 올라갔다. 산벗꽃이 흐드러지고 있었다.
봄맞이도 흐드러지고 냉이꽃과 꽃다지는 이제 한풀 꺽였다. 그 자리에 제비꽃이
피어있고 벌써 주름잎도 나온다. 애기똥풀은 복실하게 살붙이며 잎 커지고 몽알
몽알 꽃망울을 품고있다. 원추리는 연한잎이 한창이다 곧 나물꾼들이 올라오면
저 잎들은 싹둑 잘려서 식탁에 오르겠지?
취잎은 이제막 서너잎쯤 올라온다 넓적한 나물거리는 못되고 쌈에 넣어먹을 딱
그 크기이기에 한줌 뜯었다. 가시가 억센 두릅나무의 싹이 딱 제철이다.
호미로 키큰 두릅나무를 휘어 두릅싹을 제법 꺽었다. 식탁에서 좋아할 신랑과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진달래 꽃 무더기에서 한숨 쉬었다. 가져간 두유한팩을 마시고 땀닦고 디카로
그 이쁜모습도 담았다. 어찌나 여릿하게 고운지 난 진달래를 볼때마다 늘 새색시가
생각난다. 폐백드릴때 입었던 새댁한복처럼 고운 그 빛깔이 너무나 정스럽다.
조금 이른 조팝나무꽃도 피어있다.
향이 달콤해서 벌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하는듯하다. 봄소풍이라도 하나?
길가의 벗꽃과는 조금 다른 산벗꽃은 훨씬 우아하다. 가로수로 심어진 혹은 동네
입구에 심어진 벗꽃은 동글동글하고 작은 꽃잎인데 산벗꽃은 그보다 크고 훨 자태가
우아하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벗꽃은 꽃을 피우고 잎이 생기는데 산벗꽃은 잎과
꽃이 함께여서 더 조화롭다. 꿀꽃은 한주일쯤 더 흘러야 꽃을 피우게 생겼다.
할미꽃은 드디어 머리를 풀기 시작하고 그렇게 다음 타자에게 제 자리를 물려주며
산중의 봄은 깊어간다.
토욜이라서 조금 일찍 퇴근하는 원식이에게 전화를 넣어봤다.
두시쯤 제시간에 마무리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목소리가 밝지가 않다.
좀 속상한 일이 있다고 한다. 늘 개구장이 처럼 밝은 목소리인데 왜 그럴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산속을 뒤지고 다니며 그 어두운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며칠전 감사가 있었다고 하더니 그 결과가 좋질 않은건가? 아니면 또 직원들과
트러블이 있었나? 진호가 아픈가? 지난번 봄처럼 허리병이 또 도졌나?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었다. 여간해선 내색을 않는데 어지간히 속상한 일이 있지 싶어서...
산에서 내려오며 혹 퇴근한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전화를 했더니 아직 퇴근전 이란다.
그럼 이쪽으로 건너와 동동주나 한잔 마시고 가라 했다. 조금 머뭇거리기에 쌩한
목소리로 싫음 마라 했더니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며 알았어 한다.
집에와서 씻고 나물 대충 정리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집앞에 와 있단다.
덕수아저씨네 올라가 동동주와 두부 파전을 시켰다. 덕수아저씨 내외와 산과 야생화
이야길 한참 하고 얼마후 있을지도 모를 친구들 봄소풍의 장소이야기도 나누고 익모초
술도 덤으로 두잔 얻어마시고 하는데도 영 입을 열진 않는다.
제가 하고싶을때 하겠지 하며 묻지을 않았다.
결국 속내는 비치질 않고 한참 수다만 떨었다. 그래도 많이 환해진 얼굴로 돌아갔다.
나 속상할때 풀어주려고 한달음에 건너와 션한 생맥한잔 나누는 친구...
저 속상한것은 비록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위로는 해줬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대리를 해서 갔는데 잘 갔으려나...
덕수아저씨네 동동주집엔 지금 봄이 한창이다.
내가 못보았던 노루귀를 산에서 보고 캐오셨다고 마당에 심어놓은 노루귀 자랑을 한다.
에띠... 난 왜 안보였지?
사진을 찍지 말라는 원식이를 걍 무지막지하게 눌렀다....ㅋㅋㅋ
지가 어쩌겠어~
산에도 다니고 동동주도 마시고 오랜만에 덕수아저씨 내외도 만나고 친구도 위로한
나름 즐겁고 보람찬 하루였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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