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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음

by 동숙 2008.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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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오빠의 어머니...

큰집 아주머님께서 돌아가셨단 소식이 왔다.

 

어제 부재중으로 찍힌 친정엄마의 전화를 그냥 안부전화쯤으로 치부하고

한가할때 들려야지 했었는데 오늘 이른아침 다시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잠이 깨었다.

 

인호네 아줌마가 돌아가셨단다. 

어제 놀이방 가셔서 쓰러지셨다고 연락이 와서 다녀오셨다는데 산소호흡기를 꽂고

계시더란다 새벽 한시를 넘겨서 결국 운명을 하셨단다.

 

건강하게 할머님들 놀이방에 가셔서 십원짜리 고스톱도 치시고 그러셨다는데

연세가 높긴 하시지만 자식들로선 참 가슴아플 일이 아닐까 싶었다.

 

 

 

내 기억 저먼곳에 계신 그 아주머닌... 참 고우셨다.

국민학교때 방학을 하면 송파 방이동으로 놀러가곤 했었다.  그곳은 우리 집안네가

모여사는 집성촌 이기에 늘 그랬었다.  특히 철호네 할머님이 살아계실땐 그랬었다.

어찌나 날 이뻐하시는지 그분의 그 따뜻한 사랑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인호오빠의 집은 철호네와 이웃하고 있었다. 

철호네는 허름한 반 초가집이었고 인호오빠넨 엄청 큰 기와집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 눈썹에 있는 상처도 그곳 인호오빠네서 생긴것이라고 엄마한테 들었었다.

두서너살때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마주한 인호오빠의 방엘 뒤뚱거리며

들어갔다가 하얀 테이블보가 씌여진 오빠의 책상에서 엎어져 마침 책상위에 있던

펜에 눈썹머리를 찍혔었다고 하셨다. 

 

늘 인자한 웃음의 아주머님.  큰소리 상소리 한번 안하시던 귀품있던 분이셨다.

오빠들의 하얀 셔츠와 반짝거리던 대청마루의 열린 뒷문사이로 내보이던 청포도

넝쿨  그리고 과수원... 그 당시엔 송파 방이동은 과수원이 많았다.

 

복숭아 과수원이 특히나 많았는데... 그때 그곳에서 천도복숭아를 처음 먹어봤던

기억도 난다.  그분... 따뜻하고 품위있던 그분은 돌아가실때도 역시 깨끗하게

돌아가셨나보다.  오래 병구완에 자식들 지치게도 하지않고 딱 하룻만에 그렇게

가셨나보다.   삼남매 오빠들과 외동딸 언니를 남겨두고 그렇게 가셨나보다.

 

 

난 가끔 박완서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분을 떠올리곤 했었다.

어쩐지 꼭 박완서님의 고향집 그 서슬퍼런 양반가의 큰마님 같은 느낌으로 내게

남아계신 아주머님을 소설가 완서님이 알고 계신게 아닐까 싶을정도였다.

 

마지막 양반가의 안방마님 같은분....

부드럽고 너그럽고 늘 미소지으시면서도 곧은길을 가시던 흔한 상소리 한번

않으시던 목소리조차 크게 내시지 않던 마지막 안방마님같은 그분이 가셨다.

 

이렇게 기억속의 소중한 분들이 한분 두분 내곁을 떠나신다.

이런 헤어짐은 앞으로도 수도 없이 전해들을텐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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